눈과 입과 코와 귀.
빛과 맛과 향과 소리.
우리가 늘 사용하는 감각기관과 느끼는 감각이다. 있을 때는 당연한 감각이지만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큰일이 난다.
이 감각을 만족시키고 극대화시키는 데 소비 시장은 전력을 다하고 있다.
감각은 매우 예민하면서 싫증을 쉽게 낸다. 싫증을 잘 내는 것이 특성이라 할 만큼 감각은 주의를 끌기 어려운 대상이다.
반대로 감각의 관심을 끌어내면 이성은 손쉽게 항복을 선언하고 감각이 원하는 데로 우리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싫증이 쉽게 나는 감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흐름은 있다. 시간에 따라 변화도 한다. 사회는 변화를 바로 따라갈 수 없다. 그 변화를 읽어내고 만족시키는 방법을 실천한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빛, 소리, 향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이를 만드는 공간을 바꿔야 한다. 공간은 가소성이 적다. 한번 고정을 시키면 많은 자원을 들여야만 새로운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일부 실험적인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빠르게 감각을 공간에 가두는 실험을 한다. 수많은 시도 중 일부가 우리가 사는 일상 세계로 들어온다.
첫 번째가 조명이다. 조명은 우리가 보는 사물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밝은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한때의 추억인 것을 생각해보라. 우리가 사는 집의 조명은 10여 년 전만 해도 속칭 '형광등 빛'이라 부르는 색온도 6500K 또는 5700K의 불빛이 대부분이었다.
일하는 사무실과 아파트의 불빛은 구분되지 않았다. 4000K 이하의 노란 불빛은 화장실에서나 쓰는 특이한 불빛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축은 거의 대부분, 구축 아파트들도 조명을 교체해서 노란 불빛으로 많이 교체가 되었다.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휴식과 이완을 추구하는 공간은 이미 백색등을 보기 힘들어졌다. 오래전부터 유럽의 거리를 밝히는 색들이 대부분 주황빛인 것을 고려하면 그 흐름이 이제야 일상이 된 것이다.
맛은 어떨까? 몇년전부터 각종 TV 프로그램과 유튜브는 음식과 맛에 대한 콘텐츠로 가득 차 있었다. 식사 과정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뜻하는 먹방이 고유명사가 되어 전 세계로 퍼진 지도 꽤 되었다.
미슐랭 가이드가 흐름을 좀 더 촉진하긴 했지만 이미 미식이 하나의 문화가 된지는 5년 이상 되었다. 배를 싸게 채우는 공장식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음식과 손으로 만든 음식을 좋은 분위기에서 먹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 구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남은 과제는 재료의 안정적인 수급을 통해 맛은 일정 이상이면서 확실히 저렴해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 공급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식자재가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공급되어야 음식값도 전반적으로 저렴해지면서 외식 수요도 늘어나고 외식 사업자들은 음식의 맛에만 집중할 수 있다.
가격이 불안정하면 가격을 맞추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데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게 된다. 결국 사 먹는 음식 전체에 대한 신뢰만 떨어질 뿐이다.
향은 이제 시작이다. 도심 구석구석에 소규모로 만든 향들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 10여년전 힘들게 직구를 해야 구했던 디퓨저는 이제 정식 매장이 있고 할인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특별한 날에만 쓰던 향수는 이제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것 같다. 기업들은 자신들을 기억시키고 홍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고유한 향을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보문고의 향이 대표적이다.
작은 가게나 공간에서까지 향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아직 퍼지지 않았다. 문화적인 배경도 있을 것이다. 드러내는 향보다는 주머니에 싼 은은한 향을 더 선호했던 조선시대의 문화가 아직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도 있다. 향을 거부했다기보다는 선호하는 향의 형태가 다르고, 이런 문화 배경을 이해하고 만들어지는 향이 아직 없어서 그럴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향은 여러가지 기본 향을 조합해서 만들어지는 데, 기본 향을 내는 오일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수입해서 쓰는 실정이다. 해당 나라들이 오랫동안 향을 연구한 격차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익숙하고 선호하는 향들과는 거리가 있다.
기본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추출해서 평가하는 지난한 과정이 동반된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우리가 좋아하는 기본 향들이 완성되어야 향을 우리의 일상으로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소리는 땅 밑에서 싹이 트고 있다. 좋은 소리는 최신 유행 음악을 가게 바깥으로 소리나게 트는 것이 아니다. 공간의 크기와 형태에 맞춰 가장 편안하고 음의 본질을 잘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공간 내 사람의 위치, 동선 뿐만 아니라 음의 흡수와 반사에 맞춰 벽면의 재질과 음향시스템의 위치 등 고려할 것이 많다. 특히 구조의 영역에 들어가면 새로 공간을 꾸밀 때부터 음향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가게를 여는 사람들 중 음향을 고려해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전문가도 쉽게 구하기 어렵지만 인식도 안 잡혀있다.
비싼 스피커를 가져다 놓는 걸로 해결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공간의 배치를 신경 쓰지 않으면 싫증을 잘 내고 이상한 것을 잘 잡아내는 우리의 청각은 바로 그 결과를 뇌에 알려준다. 비용을 많이 들인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면서 사회적으로 좋은 소리를 신경 써야 한다는 흐름은 안 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편안하고 좋은 소리로 채워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본다.
감각은 계량이 어렵다. 숫자로 표시할 수 있는 것들로 뇌가 바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온 감각은 자신의 경험, 몸상태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새롭게 평가되어 입력된다.
대중의 감각은 흐름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집단화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흐름을 꿰뚫고 바꿀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결과는 만들어진다. 사람의 뇌는 한 꺼풀의 이성으로 감싸여 있는 커다란 본능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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