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의 주요 포털 제휴 중단 조치, 그러니까 사실상의 주요 화면 노출 배제에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부당함과 이를 결정한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에 권유의 형태로 거의 통보 또는 협박이라고 느껴질 만큼 강한 어조와 한 목소리로 연합뉴스의 복귀를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방 정치인의 공격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것까지도 걸고 넘어지는 행태만 보다가 이번 연합뉴스의 포털 배제에 대해서는 대연정이라도 된 것처럼 여야뿐만 아니라 유력 정치인들까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사안의 시비를 떠나 정치권과 언론계가 공생 관계이지 않나 할 정도로 낯선 느낌을 받았다.
제평위 측에서는 연합뉴스가 광고성 기사를 무단 배포한 것을 근거로 제휴를 중단했다고 한다. 광고성 기사를 많이 낸 신문사라면 포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맞다. 물론 그보다 더한 광고성 기사를 쓴 신문사가 수두룩한 현실에서 연합뉴스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기가 불편한 것은, 연합뉴스를 포함 주요 신문사들이 광고성 기사의 대량 발송으로 인한 제휴 중단에 대해서는 반론 내지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의 한마디 언급과 중소 인터넷 신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이 사안에 대해 언론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자기가 밝히는 사실은 진실이고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면서도 자신이 견제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사실을 숨기고 언론사끼리 카르텔을 형성한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언론이라는 기득권이 바닥을 보일 때가 되었나 싶은 씁쓸함이 든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해봤다. 언론은 세상을 감시한다. 그렇다면 그 언론은 누가 감시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귀착된다. 언론의 감시는 늘 권력의 압제와 등가로 인식되었다. 언론을 길들이고 싶은 권력의 속성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언론중재법까지 포함하면 현재 진행형의 논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언론계의 자정능력에 기댈 수 밖에 없을까? 언론계도 지방지, 중앙지, 전문지와 일간지 등 수직구조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 중앙 일간지끼리의 서로를 비판한다는 것은 정치 영역 일부 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 외에는 각종 사안에 대해 독자들에게 자기 말만 하는 신문들이 대부분이며 독자들을 모으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쓰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적어도 현재 통념상의 자정 방식은 한계가 있다.
문득 유튜브가 생각났다. 유튜브는 유튜브 운영사의 자체적인 심의가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속칭 '저격'이라고 하는, 몰래 하는 광고나 먹방의 방송 조작 등을 비판하는 유튜브도 운영되고 있다. 꽤 많은 유명 유튜버들이 이 저격에 자신의 동영상을 내리거나 수정하고 사과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복귀를 해서 다시 같은 행태를 반복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알만한 유튜버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가기는 힘든 구조인 것은 분명하다.
이는 유명한 유튜버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제작해도 충분히 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떤 동영상이나 유튜브 채널이 인기가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고, 모두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분석해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그 자체로 조회수가 나온다.
신문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예전에는 ABC라 해서 부수를 공식적으로 기록했다. 이를 늘리려고 각종 사은품이 판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기사 중심이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이 주류를 이루는 지금도 인터넷 신문의 기사 조회수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이 없다. 조회수는 신문사만이 알 수 있고 그 조회수에 따라 자극적인 기사를 쓸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언론사다.
비판 기사를 쓰려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지 공식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구글 애널리틱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신문사 입장에서도 공인된 기사별 조회수를 알 수 있으면 광고비를 세부적으로 산정해서 높은 조회수의 기사에 비싼 광고를 싣는 데도 유리하다.
조회수는 높은 데 문제가 있는 기사가 있다면 이를 링크해서 반박하는 기사를 내보낼 수도 있다. 포털에서는 링크관계를 이용해 본 기사 바로 아래 비판 기사를 달아서 상반된 입장을 비교하려는 독자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다른 주체가 아니라 생태계를 구성해서 스스로 감시를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최종 역할을 맡고 있는 분야들이 있다. 이 분야들은 여지없이 권력이 형성된다. 큰 권력일 수록 다른 권력에 예속되기 싫어하며, 예속되는 순간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의료가 대표적이고 언론도 마찬가지다. 방송에서 정확하지 않은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의사들을 쇼닥터라고 협회 차원에서 제제하고, 의료광고 또한 의료인들이 자체적으로 심의한다.
언론도 같은 방법을 따라가야 한다. 언론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자정능력이 생태계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신뢰와 권력을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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