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은 한국 고유의 전통의학 이론인 점은 분명하다. 황제내경이나 상한론에서 체질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인 언급이 있긴 했으나 이론 체계 전체를 체질을 근간으로 구성한 것이 아니며, 실제 임상에서도 체질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에 비해 사상의학은 체질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이론체계와 처방까지 체질의 개념에 종속시켜 구성해놓았다.
한국의 한의학 임상의들 중 20% 정도가 사상의학 처방을 활용한다고 하며, 대중들에게서도 허준만큼이나 체질에 대한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중의학이 팔강변증을 확장한 9종 체질을 최근에서야, 그것도 치미병 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것을 생각하면 임상과 결합된 사상의학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상의학은 처방구성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한열로만 구분 지었던 처방들을 태음인 처방에서 감한지제에 해당되는 약물을 중심으로 처방을 구성한 것이다. 마황이나 갈근, 대황 등 진액을 소모시키는 약이 사용된 것은 결이 다르지만 감한지제를 별도로 분리해서 태음인에 적용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온병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감한지제의 사용이 위축된 환경에서는 사상의학의 태음인 처방이 그나마 그 활용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의학이 한국 고유의 전통의학이라는 점 때문에 대규모 국가과제로도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여러가지 시도를 진행하고 나서 사상의학이 나타난 지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사상의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할 때가 왔다. 사상의학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고 좀 더 세련된 의학체계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사상의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체질의 실제여부다. 십 년 이상 체질을 본 전문가를 모아놓고 거의 대부분 같은 진단 요소를 가지고도 체질이 다르게 나오는 것부터 체질의학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체질은 전통의학의 진단 특징과 다르고, 오히려 생의학의 진단체계처럼 겹치지 않고 배타적이다. 소음인이면서 태음인일 수 없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명확하지만 전문가끼리도 일치율이 70%가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고 사상의학을 쓰는 사람들도 체질에 꼭 맞지 않는 처방을 써도 낫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환자가 녹용을 원하면 갑자기 태음인이 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상체질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공진단을 쓸 수 있는 환자는 전체의 50% 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면서 체질만 맞으면 치료결과가 좋다는 이야기만 돌아다닌다. 어떤 이론이 놀라운 증례 하나 없을까마는, 유독 사상의학이 더 그렇다.
사람의 체질을 네가지로 나눈다는 것, 좀 더 넓혀서 표리로 구분해 8가지로 나눈다고 하는 것도 사상과 음양론에 근거하여 나눠진 것이다. 이제마가 있던 시절에는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실체가 있느냐의 문제다.
물론 사상의학은 성정이라 불리는 사람의 인식체계와 생리, 병리, 그리고 처방까지 한 번에 일관되게 묶으려고 하였고, 이는 이전에 의학체계에서는 볼 수 없는 전위적인 시도이다. 그런 만큼 사상의학의 학설은 아직까지 가설 또는 추측의 영역이 상당하다.
문제는, 가설과 추측의 영역이 절대적인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의학의 다른 이론도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사상의학의 경우 가설의 수준이 너무 치밀한 게 되려 믿음의 영역으로 이론을 몰아붙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온병은 차라리 '우리나라에는 온병이 없다', '온병은 상한론으로 대응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이 나을 지경이다. 반론을 제시하고 발전적인 논의를 할 근거라도 된다. 사상체질에서 '태양인과 태음인은 없다.'라던가 '시호는 소음인 약이다'라는 식의 문제제기를 한 사례가 있는가? 사상의학, 좁게 말하면 동의수세보원의 글자 하나도 지금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상의학은 성정이 중심이고, 처방은 부수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유학자로서 이제마는 인간의 근본적인 사유를 통찰하려 했고, 그런 면에서 사상체질이 일종의 사람의 인지체계 차이를 밝히려고 했을 수도 있다. 사상의학의 성정 분류는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나, 이미 그러한 분류도구는 차고 넘친다. 치료도, 사람의 특성을 밝히는 것도 어느 하나 뚜렷하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사상의학에만 제기하는 것이 억울할 수는 있다. 다른 체질의학도 이러한 한계에서 못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사상의학은 그렇게 넘기기에는 현실에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의미도 있고, 비판도 수용하고 변화해야 하는 단계인 것이다.
필자는 한의학연구원에서 한동안 사상체질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체질이 있다는 전제하에 연구를 했었던 것이 지금도 아쉬울 뿐이다. 차라리 사상의학에서 이야기했던 것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체계를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그 체계를 사상의학의 새로운 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체질은 있다고 본다. 그게 유전이든, 아니면 뇌기능의 분화이든 체질이론으로 품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체질이론이 잘 정립된다면 미래의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질병의 예방이 한결 수월해진다.
다만 그것이 지금의 사상의학은 아닐 것이다. 사상의학을 발전적으로, 때로는 파괴적으로 계승한 이론체계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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