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 남짓만에 방한을 했다.
첫 일정에서 양국 정상은 반도체 웨이퍼를 방명록 삼아 서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 국민들에게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0여 년 전까지 미국 외교가 가장 힘을 쏟았던 곳은 중동이었다. 석유에 중독되다시피 한 미국에 가장 중요한 석유를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하루 생산되는 석유는 2021년 기준 9557만 배럴이다. 이 중 미국은 20%, 중국은 14%를 사용한다.
생산량은 어떨까? 미국은 전 세계 석유의 20%를 소비하지만 그만큼 생산한다. 중국은 5%만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https://www.eia.gov/tools/faqs/faq.php?id=709&t=6)
미국이 셰일가스(Shale gas)를 생산하기 전까지는 상당수의 석유를 중동에서 수입했다. 예전보다 적게 생산해도 지금 사우디아라비아가 전 세계 석유의 11%를 생산하고 있었다.
셰일가스가 생산되기 전에는 중동이 미국 경제를 쥐고 있었고, 산유국들의 입김도 강했었다. 멀리는 1970년대 오일쇼크가 있고, 2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유가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오디젤과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았었다.
북핵 위기가 처음 가시화되었던 빌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는 중동만큼 한반도 핵위기가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미국의 외교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다.
2010년대부터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하고, 매장량도 충분하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미국은 중동에 대한 관심을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된 흐름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반도체를 핵심 전략자산으로 지정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중동에서의 미국의 빈자리를 석유가 부족한 중국이 채우려고 하면서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중동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알력 다툼이 나타나고 있다.
중동에서 멀어진 미국의 외교가 관심을 가진 곳은 다름 아닌 아시아 태평양, 그중 한반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에너지 패권에서 정보패권, 기술패권으로 넘어온 것이다. 정보를 쥐고 있는 자가 힘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정보는 인터넷상에서 이동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흐르려면 스마트폰, 컴퓨터뿐만 아니라 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장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인터넷에만 그쳤으면 이만큼 파급력이 있지는 않았다. 초연결 시대이다. 그동안은 인터넷은 독자적인 연결망이고, 우리 생활에 밀접한 의식주나 교통수단은 분리되어 있다가 지금은 그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자율주행차량이 대표적이다.
반도체가 부족해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낯설면서도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망이 먹통이 되면 카페에서 커피 결제가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에 비견될만하다고 하는 인공지능의 발달은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반도체의 성능에 좌우된다.
한마디로 반도체가 없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세계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곳은 우리나라와 대만, 미국, 일본과 중국 정도이다. 중국은 고성능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 있지만 반도체 기술 격차를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이 곧 힘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 향상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하면서 견제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에다 반도체를 파는 것도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중국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바이든의 방한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골자로 하는 기존의 정치, 군사적인 동맹에서 반도체를 매개로 한 기술 동맹까지 확장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예전 미국이 중동 정세 불안정을 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반도체를 공급하는 주요 기지인 한반도와 대만의 정세 불안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 반대급부로 북한을 매개로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시도가 더욱 가열될 것이다. 중국도 반도체 패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직접 부딪히는 한반도가 된 것이다. 한반도에는 우리가 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주체가 우리인 것이다. 타의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반도체를 대신할 새로운 힘의 원천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상황을 극복하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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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특히 온병학), 사회문제, 경제경영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한의사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펼쳐놓는 공간입니다.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