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은 이대로는 유지가 어렵고 대대적인, 폐지에 가까운 개혁을 거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난 두 가지 글에 이어 또 다른 국민건강보험이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설명드리는 것은 국민건강보험 자체의 문제보다는 우리나라 공공영역의 축소 기조가 불가피하고, 그에 따라 건보 또한 축소를 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당할까요? 인구 5천만에 정식 공무원이 146만이라고 합니다. 공무원 비율만 따지면 다른 국가들보다 많지 않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바로 각 정부부처 밑에 소속된 공공기관들입니다.
제가 주로 언급하는 건강보험공단만 해도 만여 명이 일하고 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4천 명 정도가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전력공사는 2만 3천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공공영역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는 290여만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에서는 정도 차이는 있어도 공공영역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 자체를 손댔고, 이명박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원의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습니다. 큰 정부를 지향했던 문재인 정부도 지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거나 자회사 소속을 직고용으로 바꾸는 데 전념했고, 그나마도 10% 이내로 공무원 숫자를 증가시켰습니다. 인구감소가 본격화되기 전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공무원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태생적인 비효율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양가감정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관심 가는 것은 정부 돈이 들어가야 하지만 그 외 영역은 절감의 대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성을 기준으로 정부부처를 줄이려고 하면 정치 논란에 휩쓸리기 십상입니다. 공공영역이 정부 성향과 상관없이 외환위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한 이유입니다.
인구규모 대비 공무원 숫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다수 수긍하는 것 같습니다. 매년 인구가 10만명씩 줄어들고 이는 가속화됩니다. 5천만 대비 0.2%씩 줄어드는 것이니, 공공분야 일자리 300만명 기준으로 매년 6천 명 이상 줄여나가야 합니다. 5년이면 한전, 건보공단, 심평원이 통째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특정 기관에 몰아서 인원 감축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서 증가까지는 아니어도 감소폭을 적게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이를 알고는 있는 것인지, 중앙부처만 빼고 정부출연연구원 예산 20% 삭감과 같은 거친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쉽지 않고 저항도 강할 것입니다. 대부분 공공영역에서는 사람을 더 이상 뽑지 않고, 대우는 나빠지고, 있는 사람들이 은퇴하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발 빠른 곳이라면 준공무원 지위로 민간 채용을 늘려서 일을 수행할 것입니다.
한 때 정부의 역할이 대한민국의 성공을 이끄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거대한 공공영역에 대한 허용 내지는 동경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저출산으로 실낱같이 남아 있던 정부주도 정책의 공이 과로 덮였습니다.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니 더 이상 정부를 포함한 공공영역이 직접 나서서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속 편합니다.
거대한 공공영역의 축소과정에서 잡음들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영화 논란이 이어질 것입니다. 기관을 아예 없애지는 못하고 축소를 시킬 것이기 때문에, 예전같으면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도 내외부적으로 드러내고 비판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 과정을 피할 수 없다면 결과라도 잘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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